그루터기 이야기

내 맘대로 안 되니까 재밌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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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루터기 작성일08-10-24 09:53 조회3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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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맘대로 안 되니까 재밌는 거야

최진실의 죽음 전후 몰려온 죽음과 삶에 관한 질문들,
“인생의 핵심은 고통” 구절을 마음에 담다

 

지난번 ‘남의 이야기 하지 맙시다’라는 제목의 글이 나간 날 아침 오랜만에 두 통의 소식이 왔다. 한 사람은 바로 친구 F가 죽었다는 오보를 전해준 그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내 글을 봤는지 천연덕스레 문자를 보냈다.

 

“그래? 걔가 정말 무사한 거니? 인생이 고행인데 사는 게 얼마나 용기냐? 너도 나도 그러니까 잘살자!

 

어쨌든 모두가 살아 있으니 다행은 다행이어서 웃고 말았는데 또 한 사람의 친구가 모처럼 전화를 하더니, “얘 혹시 우리가 안 만난 사이에 나 모르게 죽은 애 있니?” 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우리의 인사가 이런 식이 되어 버렸나 싶어서 깔깔거리고 있는데 인터넷에 배우 최진실씨 사망 소식이 떠올랐다.

 

“엄마는 아플 것 같아서 못 죽어”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전화벨이 울려댔다. 최진실씨 사망에 대해 코멘트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왜 내게 그런 부탁을 하느냐고 물으니 기자는 머뭇거리면서 “그러니까 싱글맘이시고 또…” 하며 얼버무린다. 아마도 뒷말은 안티들이 많으시고 악플도 많이 받으시잖아요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글쎄 나는 “참 안됐다고 생각한다” 외에 사실 별 할 말이 없었다. 글쎄. 누가 누구의 죽음에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은 모두 다른데 말이다.

 

내 친구는 매일 열심히 운동을 하는데, 몸이 약해서 사람을 만나고 나면 저녁에는 일단 자리에 누워야 한다. 나는 운동이라고는 숨쉬기만 하는데도 가끔 여행을 가면 걷고 뛰고 오르고 마시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서 사흘 정도가 지나면 사람들이 슬금슬금 나를 피하는 정도이다. 또 술 마시자고 할까봐 말이다. 거기에 내가 한 노력은 전혀 없다. 내 친구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불공평한 일도 없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내 친구의 엄마는 폐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계신데 평생 담배는 그 아버지가 피우셨다. 술은 우리 아버지가 평생 원 없이 드셨는데 검사 결과 간은 우리 엄마가 나쁘시다.


하지만 나는 추위는 견디지 못한다. 언젠가 여름에 설악산 중턱에서 텐트를 치고 자다가 저체온증으로 밤새 고생한 일도 있다. 남들이 “그깟 추위에” 하는 말에 몹시 서러웠던 기억도 난다. 간은 튼튼해서 술은 잘 마실지 몰라도 나는 아마도 조난을 당하면 구조자들이 오기 전에 제일 먼저 얼어 죽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어쨌든 그날, 학교로 가면 내가 전화를 해도 잘 받지 않는 딸이 난데없이 이상한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는 엄마가 하느님을 믿어서 너무 좋아.

 

얘가 또 용돈이 모자라나, 파마를 할 때가 되었나 싶어 별 대꾸 없이 앉아 있는데 딸은 오후에 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내 앞에서 아양을 떨며 “엄마, 엄마는 하느님 믿으니까 안 죽을 거지?” 하는 것이었다.

 

순간 아까 이 녀석이 하느님 어쩌구 하는 것이 이 말을 뜻하는 것이었구나 싶어 마음속으로 약간 통증이 지나갔다. 그러더니 글을 써야 하는 내 책상 앞에 턱을 괴고 앉아서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갑자기 기분이 우쭐해졌다. 내가 술을 먹고 약간 늦게도 다니고, 취재한답시고 지방에도 자주 가고, 집에 있는 날에는 글 쓴다고 약간의 예민함을 드러내긴 해도(아이들은 그것도 모르고 신경질 부리지 마! 이런다) 괜히 어쨌든 살아 있으니 내가 좋은 엄마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딸은 건성으로 대꾸하는 내게 눈물까지 약간 글썽여 가며 “엄마는 죽고 싶은 때 없었어?” 이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귀찮은 생각도 좀 들어서 내가 대꾸를 했다.

 

“엄마가 혹시 죽으면 바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라. 엄마는 절대 자살을 할 사람이 아니야…. 왜냐하면 예전에 여러 번 죽으려고 했는데 죽지 못한 이유는 너무 아플 거 같아서 그랬어. 칼로 긋자니 손목이 너무 아플 거 같고 약을 먹으면 토할 거 아냐, 그래서 싫고 목을 매면 으으 생각만 해도 숨도 막힐 거 같고 … 그래서 못 죽어 … 알았지?

 

딸은 깔깔거리며 “나는 그래서 엄마가 좋아” 하더니 정말 기분이 좋은 듯 제 방으로 간다.

 

죽을 고비 기억하며 겸손을 배워

 

그러더니 또 전화가 왔다. 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친구이며 이 글을 꼭 보고 있다가 자기가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묘사되면 어김없이 항의를 하면서 술을 사라고 하는 그런 친구이다. 술을 먹으면서 “내 얘기 쓰지 마 엉?” 하고는 조금 더 술을 먹으면 “지영아 이거 <한겨레>에 쓰면 재밌겠다” 하는 고마운 친구이다. 그 친구가 말했다.

 

“지영아 너 … 혹시 너는 죽을 리 없겠지?

 

그날따라 하도 내게 그런 말들을 묻길래 내가 너무 안 죽으려고 했나 하는 자책마저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을 살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있었다. 대개는 사고가 일어날 뻔한 일이고 더러는 내가 자초한 일도 있었다. 만일 그때 그 운전자가 핸들을 약간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돌렸거나 바람이 좀더 세게 불었거나 나를 목 졸랐던 그 괴한이 얼결에 팔을 풀지만 않았어도 그 새벽 안개 속에서 달려오는 트럭에 뛰어들려는 나를 잡는 누군가의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일을 생각하면 나는 겸손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얼마 전 누가 “마음에 새기고 사는 구절 하나쯤 있으세요?” 묻길래 그런 대답을 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내 맘대로 되는 일 하나도 없다. 그래서 순간순간이 재미있다.

 

언젠가 몹시 힘들던 어떤 날에 “인생의 핵심은 고통이다” 라는 구절을 읽고 불에 덴 듯 며칠을 화끈거리던 기억이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도 지금의 딸처럼 눈물까지 약간 글썽이며 말하곤 했다.

 

“내가 무슨 책을 읽었는데 거기 내가 존경하는 필자가 그러더라. 인생의 핵심은 고통이다. … 너무하지 않니? 지금만 지나면 좀 나으려나 했는데 인생의 핵심이 고통이라니 … 너무하다구 응? 넌 어떻게 생각하니?

 

친구들은 내 질문을 듣고는 약간 멀뚱한 표정으로 “음 일리가 있네” 하며 내가 더 심각한 말을 할까봐 얼른 다른 말로 넘어가 버리곤 했다. 그렇게 인생의 핵심은 고통, 인생의 핵심은 고통 … 이라고 중얼거리며 한달쯤 지나노라니까 지쳐서 그랬는지 내가 원래 한 가지를 골똘히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그것도 뭐 별거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때 내가 좋아하는 성인들의 책을 읽는다.

 

친절한 말 한마디는 순교보다 위대한 일

 

교황 요한 23, 설명하자면 길지만 아무튼 아직도 꼴통 보수주의자들이 싫어하는 그런 교황이라면 약간 감이 잡히실 것이다. 그분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교황 자리에 오르기 전 상류층 사람들에게 노골적인 무시와 푸대접을 당했다. 한번은 어느 파티에서 한 사람이 성직자의 몸인 그에게 여자의 나체 사진을 보여주며 “무슨 생각이 드시냐”고 물었다.(세상에는 이런 인간들이 꼭 있다.) 그러자 요한 23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구 … 사모님이신가 보군요.

 

파티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변했다고 한다. 그분은 그 모든 것을 유머로 풀었다. 크리스마스 날 로마 감옥을 방문해 죄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러분이 제게 오시기가 불편할 거 같아 제가 이리로 왔습니다.

 

하지만 유머라 … 이게 보통 머리와 보통 내공으로 되는 일이 아닌 걸 나는 이 ‘깃털’을 쓰며 더욱 절감하고 있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성녀 소화데레사라고 하는 이가 있다. 그녀가 말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 기도하지도 좋은 일을 하지도 못할 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친절한 말 한마디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교보다 더 위대한 일입니다.

 

[출처] 한겨레신문 / 공지영 소설가